오늘의 강론
연중 제33주간 목(짝수해) - 성녀 체칠리아 순교자 기념일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것은 하느님이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던 것.
"예루살렘"에서 "살렘"이 없는 상황은 '그리스도인'에게서 '그리스도'가 없는 상황으로 들린다.
이 상황에서 '하느님의 이콘인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은 하느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엔조 비앙키).
하느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때는 내가 예수님의 현존을 마주할 때.
바로 지금 여기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건들에서 예수님이 보일 때가 하느님이 나를 찾아오신 때.
지금 여기 하느님의 현존을 보지 못하면 내가 내 모습을 잃게 되고 그럴 때면 나를 보시고 우시는 하느님.
랍비 바룩의 손자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자아이는 친구가 자기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그 자리에 숨어 있었다.
한참 만에 아이는 친구가 자기를 찾는 대신, 집으로 가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헛되이 숨어 있은 셈이 되었다. 그는 서재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울면서 자기 친구를 비난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랍비 바룩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도 ‘내가 숨어 있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A. J. 헤셀,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산길 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매일미사 2012년 11월호 <오늘의 묵상> 글 중에서 자식이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럿이 우리가 주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길입니다.두돌 묵상 "그러면 너희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오늘 복음 43-44절) 로마 군인들이 서기 73년 마사다를 공격할 때 그 높은 천혜의 요새까지 축대를 쌓아 성안에 있던 유다군을 공격하려 하였습니다. 유다 군인들은 끝까지 항전하려다가 결국은 싸우기보다는 모든 군인들이 자결하는 길을 택해 로마군인들은 피흘림 없이 전승을 거두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로마 군인들의 전법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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